축구 역사상 가장 완벽한 공격수라고 불리우는 축구의 신 마라도나가 2020년 11월 25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25일(현지시간) 로이터와 CNN 등에 따르면 마라도나는 이날 오후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의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향년 60세. 사인은 심장마비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로이터가 고인의 변호인을 인용해 전했습니다.

 

마라도나는 지난 3일 경막하혈종(뇌를 감싸고 있는 뇌 경막 아래에 혈종이 고이는 질병)으로 뇌 수술을 받았고, 11일 퇴원 후 통원 치료를 받았았고 당시 주치의는 수술이 성공적이라고 밝혔지만, 결국 퇴원 2주 만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축구에서 뛰어난 선수를 뽑자고 하면 마라도나는 항상 리스트 안에 있었 습니다. 역대 최고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펠레(브라질),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FC바르셀로나)와 함께 1인자를 놓고 항상 다퉜습니다.

 

오늘은 안타깝게 고인이되어 버린 마라도나에 대해 포스팅하겠습니다.

마라도나의 유년기

마라도나는 1960년 10월 30일, 부에노스 아이레스 주 라노스에서 3남4녀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코리엔테스 주에서 이주해 온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남부 외곽의 판자촌인 빌라 피오리토의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아버지인 돈 디에고는 가족을 위해 새벽 4시에 막노동을 하러 나간 뒤 밤늦게 돌아와 곯아 떨어지기 일수였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버지, 어머니, 누나들을 제외하면 집안의 장남인 그는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이 무엇이라도 해야한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축구 분야에서 재능을 발견했습니다. 축구공을 튕기며 재주를 부리는 트래핑을 좋아했던 마라도나는 8살 때 지역 클럽 에스트렐라 로자에서 뛰던 중 온종일 공만 갖고 논다는 빈민가 소년의 소문은 금세 주변으로 퍼져나가며 그의 재능을 알아본 스카우트에게 목격되었고 전부터 그를 주시하던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는 11살에 불과했던 마라도나에게 과감한 투자를 하기로 결심하며 계약하게 됩니다.

 

마라도나의 선수시절

마라도나는 1976년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에서 프로에 데뷔했으며, 아르헨티나 보카 주니어스(1981~1982년)에서 본격적으로 주목 받았습니다. 1982년 유럽으로 건너가 스페인 라 리가의 FC바르셀로나와 이탈리아 세리에A의 SSC나폴리에서 10년 가까이 최전성기를 보냈습니다. 1992년 이후에는 스페인 세비야FC 등에서 뛰었습니다.


그는 작은 키(167㎝)에도 불구하고 남미 선수 특유의 두껍고 탄탄한 상체와 폭발적인 스피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드리블, 위협적인 왼발 킥 등으로 그라운드를 휩쓸었습니다. 기술, 파워, 활동량을 고루 갖춘 ‘완전체 공격수’ ‘축구의 신’ 평가를 받는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마라도나의 경력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로 A매치 91경기에 출전해 34골을 넣었습니다. 선수 시절의 정점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입니다. 그는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끈 후 MVP 격인 골든볼을 수상했습니다. 특히 잉글랜드와 4강전에서 일어난 ‘신의 손’ 논란은 지금까지도 화제로 남아 있는데요. 마라도나는 손을 맞고 골대 안으로 들어간 공이 골로 인정된 후 “내 머리와 신의 손이 함께 만든 골”이라고 농담이 섞여 얘기하였습니다.

은퇴 후에는 각종 팀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다. 2008~2010년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으며 지난해 9월부터는 아르헨티나 프로축구팀 힘나시아 라 플라타를 지휘했습니다.

 

마라도나의 성격

마라도나는 또 악동 기질이 다분합니다. 1994년 미국 월드컵이 치러지는 도중에 도핑 테스트에서 적발돼 중도 하차한 게 대표적입니다. 은퇴 이후 마약 복용, 알콜 중독, 비만 등으로 연일 구설수에 올랐던 마라도나 입니다.

마라도나의 플레이 스타일

축구 선수로서의 모든 것에 능통했던 만능 플레이메이커이자 초절정 대표 드리블러입니다. 현역 시절 마라도나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매우 근육질이며, 몸도 상당히 단단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상대 선수가 마라도나를 막기 위해 무작정 몸으로 부딪히다가는 오히려 역으로 튕겨나가는 경우가 부지기수 였습니다.

그렇다고 마라도나의 드리블이 투박하지도 않았습니다. 마라도나의 드리블이 상대 수비수 입장에서 버거운 점은 근육질의 단단한 몸을 바탕으로 기술적 측면에서의 드리블링 자체도 뛰어나다보니 몸싸움으로도 잡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볼터치의 가속과 감속이 워낙 변화무쌍하면서도 속도까지 빠르다 보니 도저히 그 수비할 타이밍을 잡기가 어려웠습니다. 이 때문에 수비수들이 집요하게 마라도나의 유니폼이나 팔을 잡아채고 심지어 백태클을 숱하게 날리는데도 마라도나는 그 태클 타이밍을 다 농락하면서 전진하는 압도적인 개인능력을 과시했습니다.
이렇듯 마라도나는 축구 사상 최고의 드리블러로 평가받지만, 정작 마라도나의 진정한 가치인 플레이메이커로서의 자질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마라도나는 경기장 전체를 조망하고 경기장 곳곳의 공간에 계속 관여하면서 경기 페이스까지 조절하고 변속하는 플레이메이커로서의 자질 또한 그야말로 독보적인 수준이었습니다. 마라도나는 시야와 공간 판단력이 엄청난데다 패스의 구질과 타이밍 또한 창의적이고 변칙적이면서도 그 정확도까지 뛰어났습니다. 그렇기에 드리블을 막으려고 집중마크가 들어오는 순간 곧바로 빈 공간으로 위협적인 패스를 찔러주는 능력까지 겸비했으며, 반대로 수비가 마라도나의 공간을 미리 차단해버리면 압도적인 볼키핑으로 집중마크를 자신에게 유도하면서 상대 수비를 분산시키면서 자유자재로 템포와 공간을 주도하는 특출난 플레이메이커였습니다.

 

즉 마라도나의 강점은 경기 흐름 전체를 읽고 거기에 최선의 플레이로 대응하며 경기를 지배하는 데에 있었습니다. 드리블이든 패스든 정지상태에서의 수비 끌어당기는 공간창출이든, 마라도나는 수시로 변화하는 상황을 읽고 거기에 최적의 판단으로 최고의 플레이를 보여주면서 경기 판세 자체를 바꿔버리는 모습을 위기의 순간이나 승부처에서 매우 빈번하게 보여줬습니다.
이렇듯 마라도나는 폭넓은 시야와 창의성, 테크닉을 기반으로 패싱과 연계를 하면서 두 세명 이상의 밀집된 수비도 손쉽게 붕괴시켜 버린다. 그래서 "압박축구는 마라도나를 견제하기 위해서 만든 전술이다."라는 속설도 있을 정도입니다.

 

마라도나의 라이벌

대다수 해외 축구 팬들이 꼽는 마라도나의 라이벌은 펠레지만 현역시절 마라도나의 라이벌로 꼽힌 선수는 잉글랜드의 케빈 키건, 서독의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프랑스의 미셸 플라티니, 브라질의 지쿠&파우캉, 네덜란드의 루드 굴리트&마르코 판바스턴, 그리고 월드컵과 세리에 A에서 심심하면 만나서 경쟁했던 로타어 마테우스가 있습니다. 이 중 본인이 최대 라이벌로 꼽았던 선수는 로타어 마테우스였습니다.
현재는 자국 후배인 리오넬 메시가 세대를 넘어서는 라이벌이 되려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메시가 제 2의 마라도나?

마라도나와 메시, 마라도나와 펠레의 비교우위 논점이 비슷하다는 점이 있습니다. 마라도나의 강점은 클럽이건 국가대표팀이건 비교적 약팀의 소속으로 UEFA 컵과 월드컵을 우승시켰다는 것인데요. 대조적으로 펠레가 역대 최고의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었고 리오넬 메시는 역대 최고 클럽팀 중 하나인 FC 바르셀로나 소속이였지만 그와 달리 마라도나는 우승후보로 꼽히지도 못하던 팀을 최고의 위치까지 혼자만의 힘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마라도나 사망 원인

25일(현지시간) 로이터와 CNN 등에 따르면 마라도나는 이날 오후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의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향년 60세에 사인은 심장마비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합니다. 지난 3일 경막하혈종(뇌를 감싸고 있는 뇌 경막 아래에 혈종이 고이는 질병)으로 뇌 수술을 받았고, 11일 퇴원 후 통원 치료를 받았았고 당시 주치의는 수술이 성공적이라고 밝혔지만, 결국 퇴원 2주 만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의 축구를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영상으로나마 그의 야생마 같은 스타일의 축구를 볼 수 있어 매우 좋았습니다.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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